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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101] 안전성과 수명을 결정하는 음극 소재
2024.07.05
명사 뒤에 붙는 숫자 ‘101[wʌ́nouwʌ́n]’은 기초 과정, 입문, 기본이라는 뜻입니다. '배터리101'은 배터리가 궁금한 모든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 배터리의 역사부터 기초 원리, 구동 원리 등 기술적인 부분과 IT, 전기자동차, ESS 등 산업적인 부분, 그리고 차세대 기술과 삼성SDI가 열어갈 미래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배터리가 만들어갈 더 나은 세상은 우리의 상상보다 무한할 것이기에, ‘배터리101’을 통해 그 세상 속에서 삼성SDI의 역할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
흑연의 양과 질이 용량에 영향을 준다
충전을 위해 배터리의 전원을 연결하면 양극 기재(알루미늄)는 양극 활물질에 있던 전자를 음극으로 보냅니다. 이때 전자는 전해질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배터리의 극 부분인 탭을 통해 이동합니다. 전자와 달리 리튬이온은 전해질을 통과해 음극 쪽으로 흐릅니다. 이렇게 다른 경로로 전자와 리튬이온 모두 음극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음극을 이루는 흑연은 기본적으로 아주 규칙적인 층상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탄소(carbon)가 결합된 여러 개 층이 쌓인 모양인데, 리튬이온과 전자는 이 층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리튬이온이 흑연층으로 이동하게 되면 충전이 끝납니다.
그런데, 흑연층에 전자가 들어 있는 것은 안정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리튬에서 나온 전자와 리튬이온은 계속해서 양극 활물질인 리튬금속산화물로 돌아가려는 경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전 시 전자와 리튬이온은 공이 언덕에서 미끄러지듯 양극으로 이동합니다. 이처럼 음극의 흑연은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부분에만 관여합니다. 다시 말해, 음극의 주요 소재인 흑연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학 반응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애초에 음극 소재로 흑연이 채택된 가장 큰 이유는 전자와 리튬이온을 잘 받을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흑연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흑연의 양과 질은 배터리의 용량과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양극에 활물질을 많이 넣어 전자를 많이 내보낸다고 해도, 음극에서 전자와 리튬이온을 많이 받지 못하면 배터리로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조흑연 제조 과정 및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의 결정]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음극재의 기초가 되는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구분됩니다. 요즘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을 혼용하면서 인조흑연의 비중을 늘리는 추세입니다. 최초의 음극재로 사용됐던 하드카본은 탄소계(저결정탄소)로 출력은 가장 높지만 용량이 작아 최근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천연흑연은 땅속에서 만들어지는 지하자원으로, 탄소 성분이 오랜 시간 고온과 고압을 받아 만들어집니다. 때문에 층층이 쌓인 층상 구조를 가지며 그 틈 사이로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릅니다. 그러나 천연흑연은 이온의 이동경로가 양 옆의 두 곳밖에 없어 충방전 효율이 떨어집니다. 충방전이 지속되면 이온이 이동하는 사이 층이 벌어져 부풀어 오르는 스웰링(swelling) 현상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그럼에도 용량이 높으며 인조흑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표면처리 기술의 발달로 초기 충전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인조흑연은 코크스(Cokes)와 피치(Pitch)를 원료로 섭씨 3,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가열해 제조합니다. 인조흑연은 천연흑연보다 수명이 길고 고출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리튬이온의 이동 경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효율성을 높이며, 급속충전에도 유리합니다. 또한 등방형 구조의 안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웰링이 적게 일어나고 배터리 수명도 긴 편입니다. 다만 천연흑연에 비해 생산 과정이 길고 복잡해 값이 비쌉니다.
음극 소재 개발은 계속된다
배터리를 충전하면 리튬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면서 흑연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피가 10% 정도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데, 이를 스웰링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배터리에 좋지 않습니다. 충방전을 거듭하며 부피 변화가 지속되면, 배터리 내부에 미세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이때 흑연의 구조가 무너지거나 가스가 발생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배터리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음극재 종류별 특징]
이처럼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음극재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흑연의 뒤를 이을 소재로는 실리콘(Si)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실리콘은 흑연과 비교해 무게당 용량이 높고 충방전 속도도 빠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흑연은 6개의 원자가 1개의 리튬이온(LiC6)을 저장하지만, 실리콘은 5개의 원자가 22개의 리튬이온(Li4.4S)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극 활물질로 실리콘을 사용하고 양극재를 더 첨가하면 이론상으로 고용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실리콘의 매우 높은 팽창률 때문입니다. 흑연은 10% 안팎으로 부피가 팽창하는 반면 실리콘은 최대 400%까지 부피가 팽창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얇은 고체막층의 파괴도 실리콘 사용을 어렵게 합니다. 얇은 고체막은 전해질이 활물질과 반응해 만들어진 보호막으로 이온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전해질로부터 음극 활물질을 보호합니다. 실리콘을 음극 활물질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실리콘의 팽창으로 얇은 고체막층이 파괴될 수 있어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실리콘 음극 소재에 저장된 리튬이온]
이에 따라 최근에는 실리콘의 장점은 취하고 팽창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실리콘의 입자를 작게 만들거나 탄소에 실리콘을 나노 코팅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삼성SDI에서는 실리콘탄소복합체(SCN, Si- Carbon-Nanocomposite)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실리콘탄소복합체(SCN)는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의 수천 분의 1 크기로 나노화한 후, 이를 흑연과 혼합해 하나의 물질처럼 복합화한 소재를 말합니다. 이는 실리콘과 흑연을 혼합해 각자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입니다. 실리콘을 아주 작은 사이즈로 복합화했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하면서도 부피 팽창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